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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3.06.22 112 - 숭어낚시 1
  4. 2013.06.15 115 - 땀의 계절, 개국 2
  5. 2013.06.13 113 - 가면, 다른 것과 틀린 것, 성찰하기
  6. 2013.06.13 112 - 고구마밭 소식
  7. 2013.06.13 110 - 첫 번째 기념일
  8. 2013.05.31 100 - 할머니
  9. 2013.05.30 099 - 고구마 땜빵 1
  10. 2013.05.28 097 - 꽃게 두 망 2

120 - 파씨

다정한 일기/리 2013. 6. 2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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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동큐제과 깡통을 몇십 년 동안 가지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가져와 화분으로 삼게 되었다.

가장 늦게 핀 한련화를 담아 창고 처마 끝에 내걸었다.

하하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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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저씨들은 한가해지면 후레질(그물낚시)을 한다.

숭어 10~15마리를 금세 잡는다.

이날은 할아버지들 한 팀, 아저씨들 한 팀이 숭어를 잡았다.

다들 빤스바람이라 멀찍이 앉아서 구경했다.

 

숭어는 뻘만 먹고 산다는 데 어쩜 그리 클까.

김치도 안 먹고 돼지고기두루치기 한 번 안 먹었는데도

어쩜 그리 크고 힘이 셀까

뻘이 위대한 건가?

아무래도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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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덥다.

무진장 덥다.

 

하지만 우리로써는 본격적인 노동의 계절이다.

뒷밭에 드디어 잡곡을 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수, 흰콩, 검은콩, 기장, 팥 등을 심고 있거나 심을 예정이다.

오전일하고 점심 먹고 나서 눈 붙이고 오후일 한다.

8시간쯤 일하는 것 같은데, 대부분의 시간이 땡볕이니 고되긴 하다.

고랑에 앉아서 일했더니 이어폰줄도 흙빛이 되었다.

땀을 줄줄 흘리면서 일하다가 바람이라도 한 줄기 지나갈 때면 어찌나 시원한지.

 

오늘은 우리 동네 개 잡은 날.

회관으로 갔더니 여섯 상이나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들어갔다. 바쁜 사람에 대한 할머니들의 배려다.)

회관 강아지들은 아니고, 사 온 개를 잡았다고 했다.

여기 분들은 보신탕을 '개국'이라고 한다.

 

한달 만에 모두 모여 식사하는 날,

오랜만에 보는 내 얼굴에 할머니들이 이것저것 묻고 또 당부하신다.

 

고구마밭 풀약은 줬냐.

아침에 일찍 일하고, 땡볕에서는 절대 일하지 마라.

친정어머니가 (일하는 거) 보면은 당장 데려가고 싶을 거다, 어린 것이 저 고생이니.

종일 밭에 앉아 있는 거 보는데 내가 다 가슴이 아퍼.

올해 한 번 해 보고, 내년엔 집어쳐. 그거 하다 골병 드는 거야.

 

육모초(익모초) 잎을 우유랑 같이 갈아서 먹으면 일사병 예방에 좋다는 사실도 알았고,

갓 담근 김치도 한 통 얻었다.

 

잠도 달게 자고 기운 돌아왔으니 이제 팥 심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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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적응하는 일은 금방 끝났다.

이제는 섬을 탐험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대가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일에 적응하는 것은, 몇 년이 걸릴 지 모를 일이다.

 

물론 모두에게 적응할 생각은 없다. 그게 가능한 일도 아니고.

나는 보통 70대 이상 어르신들 앞에서는 말 잘 듣는 젊은이가 된다.

하라면 하고 말라면 말고 충고도 듣고 꾸중도 듣고 칭찬도 듣고, 잠자코 듣거나 '네'라는 답만 한다.

심적이든 물리적이든 거리가 있는 5~60대 앞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좀더 가까이 지내는 5~60대나 이하 세대 앞에서는 본래의 내가 된다.

나를 그다지 숨기지 않는 데는,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요, 당신은 어떤가요, 우리 잘 지내봅시다, 

대강 이런 뜻이 숨어 있다.

그래서 때로는 15~20년 연상의 아저씨들 앞에서 언성을 높여가며 열성을 다해 내 의견을 이야기하고 토론도 건다.

 

그런데 어제의 술자리에는 실수를 했다. 

가면을 써야 하는 자리였는데, 가까운 분들이 함께 하는 바람에 마음이 풀어졌다.

나는 그렇다.

젊은 사람은 자고로 어른들 말씀을 들어야지, 거기에 토 다는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께는, 그 분의 마음이 편해지는 쪽으로.

나도 다 겪었고 시골생활은 그러하니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내 말의 의도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상황에서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어요, 라고 아무리 말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싶은 분께는, 역시 그 분 마음이 가는 쪽으로.

귀농에 성공하는 길은, 하우스 재배를 기반으로 하는 특작의 대가가 되고 체험 농장을 운영하고 펜션을 운영하는 거라고 그것 밖에 없는 것처럼 말하는 분들께도, 그 분들 마음에 와닿는 답을.

(저는 그런 데 관심없어요, 삶의 방식은 다양한 거니까요.... 라는 말을 함으로써 - 물론 불퉁스럽게 말한 건 아니었다! -  뭔가 호의를 가지고 말을 건네준 상대가 무안해 하면서 스스로를 방어하느라 나를 공격하려는 태도로 바뀌는 것을 굳이 볼 필요는 없잖아.)

 

그 분들은, 그 분들 나름의 살아온 역사가 있고, 그것이 그들의 생각을 만들었고, 그들이 믿는 바가 있고 그들의 방식이 있고 나와는 다를 뿐이다. 아쉬운 점은, 나는 '당신과 나는 다르다'라고 했을 뿐인데, 대개 내가 '당신은 틀렸어'라 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방어적으로 변하고, 나를 공격하게 되고... 나는 또 이게 뭐냐, 관두자 싶어지고... 반성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내 태도가 오해를 불러올 수 있었겠구나 하는 점. 어쩌면 내 안의 깊은 곳에서는 '나는 옳고 당신은 틀렸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 나를 들여다 보고 성찰해야 할 지점이다. 그리고 모든 대화에서 진심으로 상대의 말을 귀기울여 들을 것. 순간순간 잊지 않도록 해야겠다. 잊으면 또 되새기고, 또 되새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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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이상 죽을 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시달리며 애써 마음을 비워 놓았다.

비 온 뒤 찾아간 고구마밭에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좋은 소식,

고구마가 거의 다 살았어요.

감자와 함께 구황작물로 알려져 있는 고구마, 정말 강한 식물이란 걸 다시금 느낌.

끊어진 줄기 끝에서도 잎이 자랐으니...

앞으로도 잘 커다오.

 

 

 

나쁜 소식,

멧돼지가 다녀갔어요.

이런, 심은 지 얼마나 됐다고... 밑도 안 들었는데 멧돼지가 밭을 헤쳐놓고 가다니...

마침 지나가던 샛멀 할아버지 한 분이 직접 확인하셨으니.... 우리 동네 핫이슈는 당분간 멧돼지 출현일 것이다.

짝꿍과 O 아저씨가 드럼통을 묻어 두었는데, 어찌 될 지.. 지켜보자!

(정말 잡히면 그 멧돼지 어쩔.... 다른 곳에 가 줄래? 사는 데를 알려주면 먹을 것을 갖다줄테니 밭만은 해치지 말아다오, 할 수도 없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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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길 한가운데서
쏟아지는 별빛 아래 입맞추고

토마토 지주대를 세우고
흰콩을 포트에 넣고
논가장자리 모를 떼우고

한밤의 갯벌에서 밴댕이와 황새기를 줍고
갯벌의 끝과 바다가 만나는 곳까지 같이 걷고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발밑에는 잔별 같은 불씨가 반짝이고
...
첫 번째 결혼기념일은 이렇게 지나갔다.
뭐가 더 필요하겠니, 이거면 됐지, 싶었던 하루.

(어머님이 맛난 거 먹으라고 용돈을 주셨다. 덕분에 강화 나가서 옛날 스타일루다가 갈비랑 냉면 먹었다.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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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가는 길들이 생겼다.

길은 미지의 공간으로 이어져 있는데, 내 발걸음은 중간에서 멈추곤 한다.

밭까지만 가니까, 하우스까지만 가니까, 오늘은 힘이 드니까.

 

하우스 고구마에 물 주러 가는 길, 너무 땡볕이라서 시간도 보낼 겸,

늘 멈추던 길의 한 지점에서 다른 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 보았다.

양쪽으로 그리 크지 않은 밭이 여러 개 이어지더니

길 끝으로 모래사장, 갯벌, 그 너머 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몸이 너무 작은 할머니.

 

조개더미를 짊어지고 걸어오는 할머니는 허리를 너무 푹 숙인 나머지,

상체와 다리의 각도가 90도도 채 안 되어 보였다.

샛멀에 사시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다 드리기로 했다.

자전거 바구니에 조개를 넣는데, 바퀴가 휘청 돌아갔다.

나일론줄로 짠 가방은 튼튼해 보였지만,

이렇게 무거운 조개더미를 메고 걸어간다면 어깨에 멍이 들 것이 분명했다.

듬성듬성 빠져나간 치아 사이로 자꾸 말이 샜다.

이 섬에서 태어나 여태 살았다는 할머니는,

작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돈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고구마순은 어제보다 더 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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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사흘 연속 내렸고, 대부분의 고구마순은 자리를 잡은 듯 하다.

하지만 이렇게 말라 비틀어져 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녀석들도 꽤 많았다.

 

원래는 어제 땜빵 작업을 하려고 했는데,

도 할머니네 고구마 심는 작업을 하고 나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해 우리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도 할머니를 돕는 일은 분명 잘 한 일이다.

그 집에 갑자기 생긴 안 좋은 일은 둘째 치더라도, 이웃들 일을 도울 수 있을 때 돕는 건 당연히 해야할 일이니까.

그리고 도 할머니의 판단은 정말 훌륭했다.

비가 이틀 내려 땅이 젖은 상태라 물을 주지 않아도 되었고,

심고서 두 시간쯤 지나자 다시 비가 오기 시작해 고구마순이 자리를 잘 잡을 테니까.

 

안타까운 건 우리 고구마. ㅠ

아침에 짝꿍이랑 같이 작업하려고 했는데, 잠깐 미적거리는 사이 모내기 준비 때문에 O 아저씨가 오셨고,

고구마 땜빵 작업은 논일에 밀려서 나 혼자 하게 되었다.

비 내린 후라 상태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확연히 구분 되었는데,

생각보다 땜빵 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근데 이건 내 느낌일 따름이지, 동네 할머니들 말씀에 따르면 죽었다 살았다 몇 번 하고서 자리를 잡는다니,

그냥 두어도 괜찮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순이 많아서 일단 땜빵을 시작했다.

2시간 쯤 일을 하고 나자, 처음에는 비에 젖어 잘 잡히던 흙이 굳어가면서 손톱이 아플 지경이었고,

땡볕에 여린 순을 옮겨 심기도 애매해서 그만 하기로 했다.

이랑 16개 중 8개의 작업을 마쳤다.

나머지 중에도 말라 비틀어진 순이 많다는 걸 안다.

그것도 다 새 순으로 바꿔주고 싶지만,

동네 아저씨들이 키운 고구마순은 이제 너무 커서 심기에 적당해 보이지 않았다.

집에 미리 챙겨둔 순들도 이제 시들어 가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양과

일을 할 수 있게 주어진 시간과

적당한 날씨의 조합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게다가 동시에 진행되는 일과 관계들 사이에 마음놓고 내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지난 석달 동안 내가 여기 살면서 겪은 어려움은,

결국 섬이라는 공간이 주는 고립감이 아니었다.

사람 사이에 사는 일,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완전히 다른 이들의 흐름에 어떻게든 적응하는 일.

아직도 진행형이라 판단을 유보하는 부분도 있고, 섣부른 판단이 자신없는 부분도 많다.

 

아마도 올 한 해는 몸과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시간의 연속이겠지.

다행인 것은, 이 섬이 나는 좋다는 것.

땀흘려 밭일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잡곡농사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잘 해 보자. 어떻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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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들의 호의로 종종 먹을 것이 생긴다.

아주머니 할머니들은 반찬을 주시고,

아저씨들은 숭어, 가재, 꽃게 같은, 아주 싱싱한 해산물을 주신다.

 

반찬을 얻어오는 날은 기분이 아주 좋다.

그냥 바로 먹을 수 있으니까, 요리 안 해도 되니까 입이 째진다.

 

하지만 해산물을 얻은 날은,

솔~직히 말해서,

고마운 마음 한켠에 괴로운 마음이 생기는데...

손질의 어려움과 비린내 때문이다.

내 몸과 마음의 상태와는 관계없이,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던져지는 상황에 대한 부담감도 무척 크다. (무라까미 아저씨네 하우스에서 열무를 마저 수확해 온 날도 그랬다. 힘들어 죽겠는데 다듬어야 하는 열무가 산더미.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하루 내팽개쳤더니, 그새 잎이 노래져 반 정도는 퇴비통으로 들어갔다. 미안해 엉엉...)

 

가재를 처음 본 날도 그랬다.

우리 표고버섯 종균 주입하는 날이라 집근처에서 아저씨 여러분이 같이 일하셨고,

오후에 샛멀 죽방새우 아저씨가 가재를 한 망 가져오셨다.

참으로 드실 거라며 소금 두 숟갈 정도 넣고 쪄내 오라고 하는데,

처음 보는 가재를, 어떻게 손질해야 할 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징그럽게 생긴 데다, 살아 꿈틀거리는 애들을,

나더러, 어! 쩌! 라! 고!!!!!!!!!!!!!!!!!!!! 

솥에 물을 되는대로 담고 가재를 가득 넣고 소금 두 스푼 넣고, 기어 나오려는 가재들 위로 뚜껑을 덮고 불을 켰다.

속으로 엉엉 울면서, 얘들아, 미안해... ㅠㅠ

 

그 뒤로도 몇 번 가재장 담을 일이 있어 가재는 이제 익숙하지만,

(그래도 손질할 때 목 자르는 일은! 못 하겠다. 몸을 튕기듯이 구부릴 때의 느낌이.. 너무 괴롭다.)

오늘 꽃게 두 망은.....

또 울고 싶었는데 다행히 짝꿍이 다 다듬어 주었다.

(한 번 해보려고 덤비긴 했는데... 껍질이 벗겨진 꽃게가 반으로 갈리는 순간 집게다리를 떨었다. ㅠ)

 

여섯 마리는 꽃게탕 끓이고, 나머지 열댓 마리는 양념게장을 담갔다.

숭어찌개, 숭어조림, 가재찜, 가재장, 가재무침... 이제는 꽃게탕에 양념게장까지. 헐....

 

 

그동안 하나하나 해 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난 아무래도 나물 무쳐먹고 김치 담가먹는 게 맘편하고 좋다.

더이상은 안 갖다 주셔도 됩니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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