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밭은 풀쟁기로 김을 맬 거라서, 오늘은 팥밭을 맸다.

제법 큰 풀은 손으로 뽑고, 작은 것들은 호미로 긁어내고, 거세미(담배나방 애벌레)를 잡았다.

 

요즘 나를 사로잡는 생각은 이거다.

풀이랑 벌레랑 다정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러려면 아직은 먼 듯하다.

내 마음이 반듯하지 못한 탓이다.

그리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막상 김매러 나가면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만다.

빠끔 머리 내민 어린 풀 하나까지도 쏙 뽑아놓고선 텅 빈 고랑을 보며 뿌듯해 하고 있으니...

그러지 말고... 고추밭 정도로만 해야지 싶다. 너무 무성해서 방해될 것 같을 때 낫으로 베어 고랑에 뉘여주는 식으로.

 

벌레를 생각하면 좀더 마음이 복잡하다.

풀은 그저 많이 자라고 빠르게 자라서 방해가 되는 정도지 작물에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벌레는,

벌레는 말하자면, 먹을 것 가지고 나와 다투는 대상이다.

 

찰토마토, 방울토마토, 대추토마토 해서 모종을 10개 가량 심었는데,

지금껏 따먹은 토마토는 찰토마토 반 개, 방울토마토 5개, 대추토마토 3개 정도다.

써 놓고 보니 더 열받네. --;

 

그나마 나 먹으려고 심어둔 것들은, 봐준다는 심정으로 내가 조금 먹으면 된다고 치기라도 하지,

내다 팔아야 할 것들이 그렇게 되면 어떡하느냐 이 말이다.

(사실 벌레도 그렇지만 고라니, 멧돼지는 더 큰 문제다. 하지만 여기서 이 얘기는 하지 않기로.)

 

그래서 벌레에 대한 마음은 아직 안개 속을 헤매는 중이다.

다만 고것들에 대해 뭘 좀 알아야 억울하고 불안한 마음에서 벗어날 것 같아서 책을 읽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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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곳에 무리없이 적응할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젊다는 것, 다른 하나는 가진 게 없다는 것.

 

우리에게는 아직 차가 없다. 앞으로도 없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시골에서 트럭 한 대 없이 농사를 짓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아침저녁으로 돌봐야 하는 논이며 밭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데다 짐이며 사람이며 옮기든 나르든 하려면,

차는 필수다.

 

5개월 동안 자전거와 오토바이로 살았다. 트럭도 참 여러 번 빌려타고 얻어타고 아저씨들께 신세를 많이 졌다.

비 오는 날은 이래저래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오토바이가 있어서 제법 괜찮았다.

그런데 오토바이마저 고장 나 강화에 보내고 난 후, 오토바이를 타던 짝꿍이 자전거를 타게 되고,

자전거를 타던 나는 주로 집 근처에 머물렀다.

 

어제는 오랜만에 비가 그쳤고, 짝꿍은 벼르고 별렀던 논김을 매러 나갔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서.

나는 호랑이 플레이어 수거하러 고구마밭에 갔다.

물론 걸어서.

갔다가 김도 좀 매고 짝꿍이 있는 논으로 가서 일을 좀 하다가 택배 물건 찾으러 선창에 갔다.

자전거를 타고서.

맨발로 논김을 맨 데다 고인 물도 여러 번 지나가서 티셔츠 뒤로 진흙물이 엄청 튀었지만,

뭐 어쩌겠나 싶어 그냥 다녔다. 별로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일하면 다 그렇게 엉망 되는 거니까.

 

물건을 찾아가지고 돌아가려다 매표소 한 사장 아저씨랑 잠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나왔느냐고, 물건 보내달라고 그러지 그랬느냐고 (짝꿍한테 시키라는 말씀이었는지, 다른 방도를 찾아보라는 말씀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척 안쓰러워 하셨다. 괜찮아요, 괜찮아 ^^ 한 손으로 제스처까지 써 가며 인사드리고 출발할 때까지도 아저씨의 걱정스런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흠? 나는 괜찮은데, 심지어 선창으로 내려오는 내리막길이 길어서 신난다 하고 온 참이었는데, 다른 분들 보기에는 그렇게 안타까운 상황이었나? 오르막길에서 낑낑대긴 해도, 오늘은 끌지 않고 올라갈 수 있을까? 한 번 덤벼보자, 뭐 이런 생각을 하는 나로서는 웃으면서 정말 괜찮다는 말을 전할 도리 밖에는.

 

짝꿍은 자전거 타고서 집으로 가라고 했지만, 혼자 몇 시간 일한 아이를 차마 걸어서 오라고 할 수는 없어 다시 논으로 갔다.

자전거를 놓고 집까지 걸어오는 데 35분 정도 걸렸다.

아주 천천히 걸어서.

걷는 동안 안개가 점점 짙어졌고, 나는 백로와 왜가리와 해오라기를 보았고, 졸다가 발걸음 소리에 놀랐는지 후드득 거리며 수직으로 날아오르는 오리를 보았으며, 올해 첫 달맞이꽃을 만났고 가락지나물인지 미나리아재비인지를 보았다.

 

우리에게 조만간 중고 트럭이 생길 지도 모르겠다.

차 없이도 잘 살고 있다는 자부심과 약간의 낭만을 편리함과 맞바꾸게 될 거다.

생존에 필수적인 면이 있어 단순히 편리함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긴 하지만.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걱정은 더 커질 테고.

결국은 선택인 거고, 갈수록 선명한 것은 줄어든다.

그것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변명을 늘려가는 것만은 아니기를 바랄 뿐인데, 잘 모르겠다.

 

 

 

오솔길에 어울리는 건 역시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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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내기 장화.

농민장. 패션장 겸용.

분홍 화살표 부분을 확대해 보면 아래와 같다.

 

 

"모내기 장화 사용하신 후 가위로 잘라쓰세요"

아래는 모내기 장화의 실제 사진이다.

 

 

이, 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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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거미줄은 이쁘기도 하지.

 

 

어머나, 깜짝이야. 뒤돌아 보면 개구리가 있다. 벌써 두 번째 만남.

이번에는 저 녀석 머리보다 작은 꼬맹이도 옆에 있었지.

제발 이불이랑 신발 속에 들어가지 않기만 기도할 뿐. ㅠ

 

장마가 너무 길어서 지친다.

해가 나지 않는 동안 할 일이야 여럿 있지만,

해가 나지 않으니까 어쩐지 조금 우울하고 또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결국은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된다.

 

뭔가를 직접 해 보는 일에 주저함이 많은 데다

어떤 것은 귀찮고 어떤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아 놓친 것들이 많다.

마음 속으로 구석에서 손들고 반성 중이다. 무릎도 꿇어야 하나. 하아...

 

두 번째 고라니 습격에서 서리태가 그리 많이 뜯어 먹힌 걸 보고,

자포자기하는 심정도 좀 되었더랬다.

너 한 입, 나 한 입, 같이 살면 좋겠다는 생각은 사람 생각일 뿐,

벌레나 새나 멧돼지 고라니 같은 짐승들은 그 곳에 먹을 것이 있으니 배부를 때까지 먹는 일에 열심일 뿐이다.

에헤라디야, 어째야 하나~~

 

오늘이 초복이라는데 비가 내리고 선선한 날씨다.

에헤라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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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키보다 커버린 풀들을 줄기마다 끼고도 땅콩은 자라고 있다. 예쁜 꽃이 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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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종하려고 남겨둔 채심 줄기들.

어제 하루종일 비바람에 시달려 허리가 꺾인 채 쓰러져 있었다.

대략 채종할 때가 된 것 같아서 쨍한 햇볕에 반나절 말려두었다.

 

꼬투리를 누르면 탁 하면서 씨앗들이 또르르 떨어진다.

 

 

대략 한 꼬투리에 20~30개 정도의 씨앗이 들어 있었다.

 

오늘 받은 씨앗이 밥그릇 바닥을 빼곡히 채웠다.

회색으로 보이는 것들은 아직 덜 영글거나 잘못된 것 같다.

나머지는 내가 받아왔던 씨앗처럼 검거나 붉은 색.

가을에 심어봐야지. ^^

 

* 채심 재배일지 http://bri2013.tistory.com/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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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잡곡밭 3번에는 비닐을 씌웠다.

김 언제 다 맬려고 비닐도 안 씌우고 풀약도 안 주느냐는 지청구를 여러 번 들었더랬다.

알라(풀약) 한 봉에 10400원인가 하는데, 그거 두 봉이면 쎄빠지게 고생할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나도 직접 들었다.

 

딱히 그래서만은 아니고....

비닐을 안 씌운 1, 2, 4, 5, 6번을 둘이서 관리하기 벅찰 지경이라는 걸 우리도 알고 있어서

3번에는 비닐을 씌우기로 결정한 거다.

 

 

요즘은 서리태를 심는다.

열흘 전쯤 포트에 넣은 콩인데, 105구 짜리라 비좁아서 그런지 애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조금 웃자랐다.

아침에 5시 반~6시쯤 일어나 마당일, 텃밭일 하는 사이에 포트 1~2개 심고,

점심 먹고 좀 쉬다가 오후에 나가서 마당일, 텃밭일 하다가 또 포트 1~2개 심는다.

일은, 같이 하기도 하고 혼자 하기도 하고 그런다.

27개 이랑 중 12개를 끝냈고, 15개 남았다.

남은 이랑을 보거나 생각할 때, 막막한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쉬엄쉬엄 사부작사부작 하면 되겠구나, 편안한 마음이다.

여차하면 농활 온 대학생들 손을 빌릴 수 있어서 더 그런 건가?

들깨는, 이번 비 오기 전에 심게 되면 심고 아님 말고...

 

 

잡곡밭 5번에는 6월 15일에 직파한 서리태가 잘 자라고 있다.

한 줄로 늘어선 쬐그만 콩잎을 보고 있으면, 초록색 나비들이 날고 있는 것 같다.

콩밭에는 콩나비, 팥밭에는 팥나비..

 

콩 다 심고, 비 한 차례 지나가면, 그 때부터는 김맬 일이, 일이로구나...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지, 생각한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내가 즐거운 만큼 할 생각이다.

아마도 가끔은 많이 할 거고 가끔은 조금 할 거다.

그리고 거둬들이는 것은 그것대로 받아들여야지.

대차대조표는 겨울에나 작성하자.

내년에 어떻게 할 지는 그 때 가서 정해도 늦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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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면 고라니나 멧돼지로 인한 농사 피해가 막심하다는 내용이 가끔 나온다.

농사를 짓지 않을 땐, 그렇구나, 피해가 심하구나, 고민스럽겠다, 생각하고 넘어가곤 했는데..

농사를 지어보니, 그리고 큰 규모는 아니지만 피해를 입어보니, 속이 뒤집어진다.

 

뒷밭에 심은 고추는 거의 초토화되었고,

잘 키워보고 싶었던 조선오이도 1/3 정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고라니와 새 피해 때문에 뭘 해 먹을 수 없다는 동네 어르신들 말씀이 있어서

나름 돈 들여 울타리도 높게 둘러 쳤는데 그것도 별 소용이 없었다.

직접 목격한 짝꿍 말로는, 그리 크지도 않은 고라니가 도움닫기도 없이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더란다.

 

벌레랑 새랑 고라니랑 멧돼지랑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으련만,

올해는 김장용 고춧가루도 못 내게 됐다.

고구마 밑이 들었을 때 멧돼지가 다시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생활비 전망도 어두워질테고.

 

여기서는 조개라도 캐고 부대일도 하고 어떻게든 해 볼 수 있다지만,

단일작물을 일정한 규모로 재배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는 농민들은 정말 힘들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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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 팥싹

다정한 일기/리 2013. 6. 22. 21:06

 

 

세상에나, 이렇게 이뻐도 되는 건가?
팥싹은 정말이지 이쁘다.

 

윗밭 고추 이랑 사이에 팥을 심었다.

비 오고 며칠 뒤에 찾아보니 잡초들 사이에 잘 올라와 있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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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를 자주 본다.

전엔 우물가에서만 보이더니 - 우물 가까이 다가가면 퐁당 하면서 다이빙 한다. 매번 그렇다.

요즘은 윗밭에서도 보이고, 옆밭에서도 보이고, 뒷밭에서도 보이고 그런다.

 

심지어 내 작은 화단흙에도 저리 몸을 숨기고 있다.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면 개구리가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 했을 거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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