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는 바도 있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바도 있지만, 그런 사족은 다 빼고 감정만 쏟아내 보자.

 

정말 짜증난다.

그들의 자기중심성. 배려없음. 무책임함.

 

휴가철에 손님을 받고, 체험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해서 수익을 작목반 공동비용으로 하자고 했다는데,

그건 말뿐이고 현실은 한두 사람이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손님들과의 연락, 각종 조율은 짝꿍 혼자 다 한다.

물론 손님들이 머물고 간 숙소 뒷정리에 나서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예상했던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이런 식이라면 어느 누가 여기 와서 함께 일하며 살고 싶을까?

빈집과 농지를 제공받고 여러 가지 고마운 점들이 있어 우리도 이만큼 애쓰고 있는 건데, 정말이지 너무하다.

 

서로 잘못한 것들이 쌓여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청년회와 노인회를 보고 있으면 참 한심스럽다.

청년회에서 노인들이 싫어할 만한 일을 만들지 않고, 좀더 잘 하면서 마음을 열도록 하면 좋겠는데,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할 말은 많은데, 아저씨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회의구조에 내가 굳이 들어가서 싫은 소리만 늘어놓기도 애매하다.

그나마 여름 농한기에는 다들 바깥일이 우선이라 회의를 할 수도 없다.

 

주거공동체에서 왔던 한 젊은 친구가, 그동안 시골로 좀 다녀봤는데 정작 맘에 맞는 사람들을 만난 건 인천이라고 했다.

귀촌이든 귀농이든 그들과 함께 해야겠다며, 결국 공간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했다. 의미있는 말이다.

짝꿍은 사람보다 공간이 중요하다고 했다.

 

사람도, 공간도 중요하다.

그리고 사람은, 나이가 많건 적건 비슷하건, 마음을 나누며 함께 일할 수 있는 이들이면 좋겠다.

나만 옳다거나 내가 옳다거나 하지 않고.

 

손님들에게는, 경우의 수를 알려주고 좋은 방향을 일러주고 그들이 결정하도록 하면 된다.

우리들끼리는, 다양한 의견을 서로 막지 말고 자유롭게 풀어낸 다음 하나하나 이유를 들어가며 함께 결정하면 된다.

그렇게 좀 하자구요, 이 아저씨들아....

왜들 그렇게 제멋대로냐고요.

왜들 그렇게 나만 잘났냐고요...

'다정한 일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184 - 말도  (0) 2013.08.23
181 - 엄마 없는 하늘 아래  (0) 2013.08.20
173 - 망고  (1) 2013.08.12
167 - 포비의 변신  (0) 2013.08.06
164 - 요즘  (0) 2013.08.03
Posted by 니니따
,

콩밭은 풀쟁기로 김을 맬 거라서, 오늘은 팥밭을 맸다.

제법 큰 풀은 손으로 뽑고, 작은 것들은 호미로 긁어내고, 거세미(담배나방 애벌레)를 잡았다.

 

요즘 나를 사로잡는 생각은 이거다.

풀이랑 벌레랑 다정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러려면 아직은 먼 듯하다.

내 마음이 반듯하지 못한 탓이다.

그리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막상 김매러 나가면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만다.

빠끔 머리 내민 어린 풀 하나까지도 쏙 뽑아놓고선 텅 빈 고랑을 보며 뿌듯해 하고 있으니...

그러지 말고... 고추밭 정도로만 해야지 싶다. 너무 무성해서 방해될 것 같을 때 낫으로 베어 고랑에 뉘여주는 식으로.

 

벌레를 생각하면 좀더 마음이 복잡하다.

풀은 그저 많이 자라고 빠르게 자라서 방해가 되는 정도지 작물에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벌레는,

벌레는 말하자면, 먹을 것 가지고 나와 다투는 대상이다.

 

찰토마토, 방울토마토, 대추토마토 해서 모종을 10개 가량 심었는데,

지금껏 따먹은 토마토는 찰토마토 반 개, 방울토마토 5개, 대추토마토 3개 정도다.

써 놓고 보니 더 열받네. --;

 

그나마 나 먹으려고 심어둔 것들은, 봐준다는 심정으로 내가 조금 먹으면 된다고 치기라도 하지,

내다 팔아야 할 것들이 그렇게 되면 어떡하느냐 이 말이다.

(사실 벌레도 그렇지만 고라니, 멧돼지는 더 큰 문제다. 하지만 여기서 이 얘기는 하지 않기로.)

 

그래서 벌레에 대한 마음은 아직 안개 속을 헤매는 중이다.

다만 고것들에 대해 뭘 좀 알아야 억울하고 불안한 마음에서 벗어날 것 같아서 책을 읽기로.

 

 

 

 

 

 

'다정한 일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0 - 포비는 훈련 중  (0) 2013.08.01
156 - 장보러 다녀왔다  (0) 2013.07.27
145 - 자전거  (2) 2013.07.15
144 - 모내기 장화 : 농민장. 패션장 겸용  (0) 2013.07.14
143 - 거미줄과 개구리 + 잡생각  (1) 2013.07.13
Posted by 니니따
,

우리가 이 곳에 무리없이 적응할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젊다는 것, 다른 하나는 가진 게 없다는 것.

 

우리에게는 아직 차가 없다. 앞으로도 없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시골에서 트럭 한 대 없이 농사를 짓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아침저녁으로 돌봐야 하는 논이며 밭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데다 짐이며 사람이며 옮기든 나르든 하려면,

차는 필수다.

 

5개월 동안 자전거와 오토바이로 살았다. 트럭도 참 여러 번 빌려타고 얻어타고 아저씨들께 신세를 많이 졌다.

비 오는 날은 이래저래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오토바이가 있어서 제법 괜찮았다.

그런데 오토바이마저 고장 나 강화에 보내고 난 후, 오토바이를 타던 짝꿍이 자전거를 타게 되고,

자전거를 타던 나는 주로 집 근처에 머물렀다.

 

어제는 오랜만에 비가 그쳤고, 짝꿍은 벼르고 별렀던 논김을 매러 나갔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서.

나는 호랑이 플레이어 수거하러 고구마밭에 갔다.

물론 걸어서.

갔다가 김도 좀 매고 짝꿍이 있는 논으로 가서 일을 좀 하다가 택배 물건 찾으러 선창에 갔다.

자전거를 타고서.

맨발로 논김을 맨 데다 고인 물도 여러 번 지나가서 티셔츠 뒤로 진흙물이 엄청 튀었지만,

뭐 어쩌겠나 싶어 그냥 다녔다. 별로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일하면 다 그렇게 엉망 되는 거니까.

 

물건을 찾아가지고 돌아가려다 매표소 한 사장 아저씨랑 잠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나왔느냐고, 물건 보내달라고 그러지 그랬느냐고 (짝꿍한테 시키라는 말씀이었는지, 다른 방도를 찾아보라는 말씀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척 안쓰러워 하셨다. 괜찮아요, 괜찮아 ^^ 한 손으로 제스처까지 써 가며 인사드리고 출발할 때까지도 아저씨의 걱정스런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흠? 나는 괜찮은데, 심지어 선창으로 내려오는 내리막길이 길어서 신난다 하고 온 참이었는데, 다른 분들 보기에는 그렇게 안타까운 상황이었나? 오르막길에서 낑낑대긴 해도, 오늘은 끌지 않고 올라갈 수 있을까? 한 번 덤벼보자, 뭐 이런 생각을 하는 나로서는 웃으면서 정말 괜찮다는 말을 전할 도리 밖에는.

 

짝꿍은 자전거 타고서 집으로 가라고 했지만, 혼자 몇 시간 일한 아이를 차마 걸어서 오라고 할 수는 없어 다시 논으로 갔다.

자전거를 놓고 집까지 걸어오는 데 35분 정도 걸렸다.

아주 천천히 걸어서.

걷는 동안 안개가 점점 짙어졌고, 나는 백로와 왜가리와 해오라기를 보았고, 졸다가 발걸음 소리에 놀랐는지 후드득 거리며 수직으로 날아오르는 오리를 보았으며, 올해 첫 달맞이꽃을 만났고 가락지나물인지 미나리아재비인지를 보았다.

 

우리에게 조만간 중고 트럭이 생길 지도 모르겠다.

차 없이도 잘 살고 있다는 자부심과 약간의 낭만을 편리함과 맞바꾸게 될 거다.

생존에 필수적인 면이 있어 단순히 편리함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긴 하지만.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걱정은 더 커질 테고.

결국은 선택인 거고, 갈수록 선명한 것은 줄어든다.

그것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변명을 늘려가는 것만은 아니기를 바랄 뿐인데, 잘 모르겠다.

 

 

 

오솔길에 어울리는 건 역시 자전거.

Posted by 니니따
,

 

 

비 오는 날 거미줄은 이쁘기도 하지.

 

 

어머나, 깜짝이야. 뒤돌아 보면 개구리가 있다. 벌써 두 번째 만남.

이번에는 저 녀석 머리보다 작은 꼬맹이도 옆에 있었지.

제발 이불이랑 신발 속에 들어가지 않기만 기도할 뿐. ㅠ

 

장마가 너무 길어서 지친다.

해가 나지 않는 동안 할 일이야 여럿 있지만,

해가 나지 않으니까 어쩐지 조금 우울하고 또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결국은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된다.

 

뭔가를 직접 해 보는 일에 주저함이 많은 데다

어떤 것은 귀찮고 어떤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아 놓친 것들이 많다.

마음 속으로 구석에서 손들고 반성 중이다. 무릎도 꿇어야 하나. 하아...

 

두 번째 고라니 습격에서 서리태가 그리 많이 뜯어 먹힌 걸 보고,

자포자기하는 심정도 좀 되었더랬다.

너 한 입, 나 한 입, 같이 살면 좋겠다는 생각은 사람 생각일 뿐,

벌레나 새나 멧돼지 고라니 같은 짐승들은 그 곳에 먹을 것이 있으니 배부를 때까지 먹는 일에 열심일 뿐이다.

에헤라디야, 어째야 하나~~

 

오늘이 초복이라는데 비가 내리고 선선한 날씨다.

에헤라디야~~

'다정한 일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5 - 자전거  (2) 2013.07.15
144 - 모내기 장화 : 농민장. 패션장 겸용  (0) 2013.07.14
140 - 땅콩 꽃이 피었다  (1) 2013.07.10
133 - 채심 씨를 받았다  (0) 2013.07.03
128 - 콩 심는 주간  (0) 2013.06.28
Posted by 니니따
,

가장 큰 잡곡밭 3번에는 비닐을 씌웠다.

김 언제 다 맬려고 비닐도 안 씌우고 풀약도 안 주느냐는 지청구를 여러 번 들었더랬다.

알라(풀약) 한 봉에 10400원인가 하는데, 그거 두 봉이면 쎄빠지게 고생할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나도 직접 들었다.

 

딱히 그래서만은 아니고....

비닐을 안 씌운 1, 2, 4, 5, 6번을 둘이서 관리하기 벅찰 지경이라는 걸 우리도 알고 있어서

3번에는 비닐을 씌우기로 결정한 거다.

 

 

요즘은 서리태를 심는다.

열흘 전쯤 포트에 넣은 콩인데, 105구 짜리라 비좁아서 그런지 애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조금 웃자랐다.

아침에 5시 반~6시쯤 일어나 마당일, 텃밭일 하는 사이에 포트 1~2개 심고,

점심 먹고 좀 쉬다가 오후에 나가서 마당일, 텃밭일 하다가 또 포트 1~2개 심는다.

일은, 같이 하기도 하고 혼자 하기도 하고 그런다.

27개 이랑 중 12개를 끝냈고, 15개 남았다.

남은 이랑을 보거나 생각할 때, 막막한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쉬엄쉬엄 사부작사부작 하면 되겠구나, 편안한 마음이다.

여차하면 농활 온 대학생들 손을 빌릴 수 있어서 더 그런 건가?

들깨는, 이번 비 오기 전에 심게 되면 심고 아님 말고...

 

 

잡곡밭 5번에는 6월 15일에 직파한 서리태가 잘 자라고 있다.

한 줄로 늘어선 쬐그만 콩잎을 보고 있으면, 초록색 나비들이 날고 있는 것 같다.

콩밭에는 콩나비, 팥밭에는 팥나비..

 

콩 다 심고, 비 한 차례 지나가면, 그 때부터는 김맬 일이, 일이로구나...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지, 생각한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내가 즐거운 만큼 할 생각이다.

아마도 가끔은 많이 할 거고 가끔은 조금 할 거다.

그리고 거둬들이는 것은 그것대로 받아들여야지.

대차대조표는 겨울에나 작성하자.

내년에 어떻게 할 지는 그 때 가서 정해도 늦지 않을 거다.

'다정한 일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0 - 땅콩 꽃이 피었다  (1) 2013.07.10
133 - 채심 씨를 받았다  (0) 2013.07.03
127 - 고라니  (0) 2013.06.27
122 - 팥싹  (0) 2013.06.22
121 - 개구리  (0) 2013.06.22
Posted by 니니따
,

섬에 적응하는 일은 금방 끝났다.

이제는 섬을 탐험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대가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일에 적응하는 것은, 몇 년이 걸릴 지 모를 일이다.

 

물론 모두에게 적응할 생각은 없다. 그게 가능한 일도 아니고.

나는 보통 70대 이상 어르신들 앞에서는 말 잘 듣는 젊은이가 된다.

하라면 하고 말라면 말고 충고도 듣고 꾸중도 듣고 칭찬도 듣고, 잠자코 듣거나 '네'라는 답만 한다.

심적이든 물리적이든 거리가 있는 5~60대 앞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좀더 가까이 지내는 5~60대나 이하 세대 앞에서는 본래의 내가 된다.

나를 그다지 숨기지 않는 데는,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요, 당신은 어떤가요, 우리 잘 지내봅시다, 

대강 이런 뜻이 숨어 있다.

그래서 때로는 15~20년 연상의 아저씨들 앞에서 언성을 높여가며 열성을 다해 내 의견을 이야기하고 토론도 건다.

 

그런데 어제의 술자리에는 실수를 했다. 

가면을 써야 하는 자리였는데, 가까운 분들이 함께 하는 바람에 마음이 풀어졌다.

나는 그렇다.

젊은 사람은 자고로 어른들 말씀을 들어야지, 거기에 토 다는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께는, 그 분의 마음이 편해지는 쪽으로.

나도 다 겪었고 시골생활은 그러하니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내 말의 의도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상황에서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어요, 라고 아무리 말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싶은 분께는, 역시 그 분 마음이 가는 쪽으로.

귀농에 성공하는 길은, 하우스 재배를 기반으로 하는 특작의 대가가 되고 체험 농장을 운영하고 펜션을 운영하는 거라고 그것 밖에 없는 것처럼 말하는 분들께도, 그 분들 마음에 와닿는 답을.

(저는 그런 데 관심없어요, 삶의 방식은 다양한 거니까요.... 라는 말을 함으로써 - 물론 불퉁스럽게 말한 건 아니었다! -  뭔가 호의를 가지고 말을 건네준 상대가 무안해 하면서 스스로를 방어하느라 나를 공격하려는 태도로 바뀌는 것을 굳이 볼 필요는 없잖아.)

 

그 분들은, 그 분들 나름의 살아온 역사가 있고, 그것이 그들의 생각을 만들었고, 그들이 믿는 바가 있고 그들의 방식이 있고 나와는 다를 뿐이다. 아쉬운 점은, 나는 '당신과 나는 다르다'라고 했을 뿐인데, 대개 내가 '당신은 틀렸어'라 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방어적으로 변하고, 나를 공격하게 되고... 나는 또 이게 뭐냐, 관두자 싶어지고... 반성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내 태도가 오해를 불러올 수 있었겠구나 하는 점. 어쩌면 내 안의 깊은 곳에서는 '나는 옳고 당신은 틀렸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 나를 들여다 보고 성찰해야 할 지점이다. 그리고 모든 대화에서 진심으로 상대의 말을 귀기울여 들을 것. 순간순간 잊지 않도록 해야겠다. 잊으면 또 되새기고, 또 되새기고..

'다정한 일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2 - 숭어낚시  (1) 2013.06.22
115 - 땀의 계절, 개국  (2) 2013.06.15
112 - 고구마밭 소식  (0) 2013.06.13
110 - 첫 번째 기념일  (0) 2013.06.13
100 - 할머니  (0) 2013.05.31
Posted by 니니따
,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길 한가운데서
쏟아지는 별빛 아래 입맞추고

토마토 지주대를 세우고
흰콩을 포트에 넣고
논가장자리 모를 떼우고

한밤의 갯벌에서 밴댕이와 황새기를 줍고
갯벌의 끝과 바다가 만나는 곳까지 같이 걷고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발밑에는 잔별 같은 불씨가 반짝이고
...
첫 번째 결혼기념일은 이렇게 지나갔다.
뭐가 더 필요하겠니, 이거면 됐지, 싶었던 하루.

(어머님이 맛난 거 먹으라고 용돈을 주셨다. 덕분에 강화 나가서 옛날 스타일루다가 갈비랑 냉면 먹었다. ^^ 고맙습니다~)

 

'다정한 일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3 - 가면, 다른 것과 틀린 것, 성찰하기  (0) 2013.06.13
112 - 고구마밭 소식  (0) 2013.06.13
100 - 할머니  (0) 2013.05.31
099 - 고구마 땜빵  (1) 2013.05.30
097 - 꽃게 두 망  (2) 2013.05.28
Posted by 니니따
,

늘 가는 길들이 생겼다.

길은 미지의 공간으로 이어져 있는데, 내 발걸음은 중간에서 멈추곤 한다.

밭까지만 가니까, 하우스까지만 가니까, 오늘은 힘이 드니까.

 

하우스 고구마에 물 주러 가는 길, 너무 땡볕이라서 시간도 보낼 겸,

늘 멈추던 길의 한 지점에서 다른 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 보았다.

양쪽으로 그리 크지 않은 밭이 여러 개 이어지더니

길 끝으로 모래사장, 갯벌, 그 너머 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몸이 너무 작은 할머니.

 

조개더미를 짊어지고 걸어오는 할머니는 허리를 너무 푹 숙인 나머지,

상체와 다리의 각도가 90도도 채 안 되어 보였다.

샛멀에 사시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다 드리기로 했다.

자전거 바구니에 조개를 넣는데, 바퀴가 휘청 돌아갔다.

나일론줄로 짠 가방은 튼튼해 보였지만,

이렇게 무거운 조개더미를 메고 걸어간다면 어깨에 멍이 들 것이 분명했다.

듬성듬성 빠져나간 치아 사이로 자꾸 말이 샜다.

이 섬에서 태어나 여태 살았다는 할머니는,

작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돈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고구마순은 어제보다 더 시들었다.

'다정한 일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2 - 고구마밭 소식  (0) 2013.06.13
110 - 첫 번째 기념일  (0) 2013.06.13
099 - 고구마 땜빵  (1) 2013.05.30
097 - 꽃게 두 망  (2) 2013.05.28
096 - 비가 온다  (1) 2013.05.27
Posted by 니니따
,

 

 

비가 사흘 연속 내렸고, 대부분의 고구마순은 자리를 잡은 듯 하다.

하지만 이렇게 말라 비틀어져 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녀석들도 꽤 많았다.

 

원래는 어제 땜빵 작업을 하려고 했는데,

도 할머니네 고구마 심는 작업을 하고 나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해 우리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도 할머니를 돕는 일은 분명 잘 한 일이다.

그 집에 갑자기 생긴 안 좋은 일은 둘째 치더라도, 이웃들 일을 도울 수 있을 때 돕는 건 당연히 해야할 일이니까.

그리고 도 할머니의 판단은 정말 훌륭했다.

비가 이틀 내려 땅이 젖은 상태라 물을 주지 않아도 되었고,

심고서 두 시간쯤 지나자 다시 비가 오기 시작해 고구마순이 자리를 잘 잡을 테니까.

 

안타까운 건 우리 고구마. ㅠ

아침에 짝꿍이랑 같이 작업하려고 했는데, 잠깐 미적거리는 사이 모내기 준비 때문에 O 아저씨가 오셨고,

고구마 땜빵 작업은 논일에 밀려서 나 혼자 하게 되었다.

비 내린 후라 상태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확연히 구분 되었는데,

생각보다 땜빵 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근데 이건 내 느낌일 따름이지, 동네 할머니들 말씀에 따르면 죽었다 살았다 몇 번 하고서 자리를 잡는다니,

그냥 두어도 괜찮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순이 많아서 일단 땜빵을 시작했다.

2시간 쯤 일을 하고 나자, 처음에는 비에 젖어 잘 잡히던 흙이 굳어가면서 손톱이 아플 지경이었고,

땡볕에 여린 순을 옮겨 심기도 애매해서 그만 하기로 했다.

이랑 16개 중 8개의 작업을 마쳤다.

나머지 중에도 말라 비틀어진 순이 많다는 걸 안다.

그것도 다 새 순으로 바꿔주고 싶지만,

동네 아저씨들이 키운 고구마순은 이제 너무 커서 심기에 적당해 보이지 않았다.

집에 미리 챙겨둔 순들도 이제 시들어 가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양과

일을 할 수 있게 주어진 시간과

적당한 날씨의 조합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게다가 동시에 진행되는 일과 관계들 사이에 마음놓고 내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지난 석달 동안 내가 여기 살면서 겪은 어려움은,

결국 섬이라는 공간이 주는 고립감이 아니었다.

사람 사이에 사는 일,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완전히 다른 이들의 흐름에 어떻게든 적응하는 일.

아직도 진행형이라 판단을 유보하는 부분도 있고, 섣부른 판단이 자신없는 부분도 많다.

 

아마도 올 한 해는 몸과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시간의 연속이겠지.

다행인 것은, 이 섬이 나는 좋다는 것.

땀흘려 밭일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잡곡농사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잘 해 보자. 어떻든.

'다정한 일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0 - 첫 번째 기념일  (0) 2013.06.13
100 - 할머니  (0) 2013.05.31
097 - 꽃게 두 망  (2) 2013.05.28
096 - 비가 온다  (1) 2013.05.27
078 - 비온다  (0) 2013.05.09
Posted by 니니따
,

이웃들의 호의로 종종 먹을 것이 생긴다.

아주머니 할머니들은 반찬을 주시고,

아저씨들은 숭어, 가재, 꽃게 같은, 아주 싱싱한 해산물을 주신다.

 

반찬을 얻어오는 날은 기분이 아주 좋다.

그냥 바로 먹을 수 있으니까, 요리 안 해도 되니까 입이 째진다.

 

하지만 해산물을 얻은 날은,

솔~직히 말해서,

고마운 마음 한켠에 괴로운 마음이 생기는데...

손질의 어려움과 비린내 때문이다.

내 몸과 마음의 상태와는 관계없이,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던져지는 상황에 대한 부담감도 무척 크다. (무라까미 아저씨네 하우스에서 열무를 마저 수확해 온 날도 그랬다. 힘들어 죽겠는데 다듬어야 하는 열무가 산더미.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하루 내팽개쳤더니, 그새 잎이 노래져 반 정도는 퇴비통으로 들어갔다. 미안해 엉엉...)

 

가재를 처음 본 날도 그랬다.

우리 표고버섯 종균 주입하는 날이라 집근처에서 아저씨 여러분이 같이 일하셨고,

오후에 샛멀 죽방새우 아저씨가 가재를 한 망 가져오셨다.

참으로 드실 거라며 소금 두 숟갈 정도 넣고 쪄내 오라고 하는데,

처음 보는 가재를, 어떻게 손질해야 할 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징그럽게 생긴 데다, 살아 꿈틀거리는 애들을,

나더러, 어! 쩌! 라! 고!!!!!!!!!!!!!!!!!!!! 

솥에 물을 되는대로 담고 가재를 가득 넣고 소금 두 스푼 넣고, 기어 나오려는 가재들 위로 뚜껑을 덮고 불을 켰다.

속으로 엉엉 울면서, 얘들아, 미안해... ㅠㅠ

 

그 뒤로도 몇 번 가재장 담을 일이 있어 가재는 이제 익숙하지만,

(그래도 손질할 때 목 자르는 일은! 못 하겠다. 몸을 튕기듯이 구부릴 때의 느낌이.. 너무 괴롭다.)

오늘 꽃게 두 망은.....

또 울고 싶었는데 다행히 짝꿍이 다 다듬어 주었다.

(한 번 해보려고 덤비긴 했는데... 껍질이 벗겨진 꽃게가 반으로 갈리는 순간 집게다리를 떨었다. ㅠ)

 

여섯 마리는 꽃게탕 끓이고, 나머지 열댓 마리는 양념게장을 담갔다.

숭어찌개, 숭어조림, 가재찜, 가재장, 가재무침... 이제는 꽃게탕에 양념게장까지. 헐....

 

 

그동안 하나하나 해 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난 아무래도 나물 무쳐먹고 김치 담가먹는 게 맘편하고 좋다.

더이상은 안 갖다 주셔도 됩니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ㅠ

 

'다정한 일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0 - 할머니  (0) 2013.05.31
099 - 고구마 땜빵  (1) 2013.05.30
096 - 비가 온다  (1) 2013.05.27
078 - 비온다  (0) 2013.05.09
077 - 동네에서 가장 초라한 텃밭의 주인  (0) 2013.05.08
Posted by 니니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