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03'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3.03 010 - 평화롭고 관대한 짐승 1
  2. 2013.03.03 010 - 쓰레기, 오토바이, K형

바빴다. 굴 캔 다음날 홍대에서 친구들이랑 놀았고, 돌아와선 냉이 캤다.


그 사이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배 타러 외포리 가는 길에 차가 심하게 막혔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여기 볼 게 뭐 있다고 이렇게 몰려드는 거야?" 하며 툴툴거렸다. 버스에서 우리 동네 K 할머니를 만나 같이 걸어갔는다. 할머니는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어릴 적 조선어 책에서 배운 글귀를 기억하고 있었다. 참 인상적인 문장들이었는데, '평화롭고 관대한 짐승' 부분만 기억이 난다.

 

교회 밥당번이 우리 동네 할머니들이어서 설거지를 거들었다. 대략 80명쯤 식사를 했다. 원래 멤버 한 분이 자리를 비웠는데, 그 자리를 내가 메워서 참 다행이었던 모양이다. 베테랑들 틈에서 열심히 움직였다. 마을회관에서는 점심 저녁을 다 해 드시는데, 앞으로는 별일 없으면 가서 상차림과 설거지, 뒷정리를 해야 한다. 식사 인원은 15명~20명 정도. 매일매일 명절을 치르는 느낌일까? 내가 요리를 하는 건 아니라서 사실 그리 힘들지는 않다.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게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겠지.

 

또래들과 어울려 일하며 살다가, 이렇게 다른 세대들에 둘러싸여 살게 되었다. 젊고 어리니까 보살핌을 받기도 하고, 내가 해야할 일들도 많다.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된다.

 

오후엔 냉이를 캤다. 할머니들 걸음으로 10분 쯤 가니 밭이 하나 나오고, 그 밭에 들어가니 냉이가 지천이었다. 호미로 냉이 양옆의 흙을 긁어내고, 냉이를 뿌리까지 힘껏 뽑아낸 다음, 호미에 툭툭 쳐서 흙을 떨어내면 된다. 한 소쿠리 캤다. 할머니가 던져주신 냉이 한움큼까지 보태서. 나보다 40년, 50년은 더 산 할머니들이랑 냉이를 캤다. 뭔가 신기하고도 뭉클한 일이다. 그리고 할머니들은 말투가 거칠고 직설적이어서 무섭기도 하지만, 이야기하시는 거 귀동냥하고 있으면 너무 재밌다. "오늘 죽어도 아쉬울 거 없어"하는 말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정말 그럴 것 같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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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니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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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음도 분들 중에 갯벌에 그물을 치는 분들은 많지만 배를 가지고 조업을 하시는 분은 한 사람 뿐인데, 그게 K형이다. 엊그제 K형네 가서 마을의 문제점, 삶의 자세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일단 내 가정(테두리)의 안정이 먼저다. 그리고 그 안정의 99%는 경제적인 부분이다. 나도 머릿속으로는 항상 생각하고 있는 내용인데, 실천이 되겠나? 노력하자.

 언제든 배에 태워주신다고 해서 무척 고마웠다. 내가 배고프다고 남이 밥 먹여 주는 거 아니다. 그러니 밭 빨리 만들어 놓고 농사일 중간중간 시간 날 때 마다 배에 타면 일당도 벌고 반찬거리도 생기고 좋지 않냐고 하셨다. 내 생각에도 K형 말대로 하는 게 가을이 왔는데 소득이 없으면 불법으로 개구리를 잡겠다는 생각보다는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K형이 안 쓴다고 버려둔 드럼통을 하나 주워와서 집 주변의 쓰레기를 태웠다. 우리집도 그렇지만 옆집도 비어있은지 오래돼서 집 주변으로 쓰레기들이 많다. 플라스틱을 골라낸다고 골라냈지만 어찌어찌 일부는 그냥 태웠다. 그랬더니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 냄새는 집안으로도 들어왔다. 조금 귀찮아도 마음속의 원칙대로 생활하는 게 그렇지 않은 쪽보다 항상 낫다. 집 주변에 풀이 무성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도 제초제는 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쪽이 낫다.는 말이다. 물론 몸을 부지런히 놀려서 풀이 무성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먼저다. 그 정도의 부지런함은 미덕으로 갖고 살고 싶다.

 

 지난 주에 어찌어찌해서 1년 간 방치된 오토바이를 어찌어찌해서 덜컥 사버렸다.

 시동이 걸리지 않았더랬다. 어쩔까 고민했는데, 배터리만 충전하면 문제 없을거란 영일군의 얘기를 들었다. 트럭이랑 고무바로 연결해서 일단 p형네까지 끌고 오기로 했다. 끌고 오는 중에 시동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은 배터리 충전중이다. 굴러가지도 않는 것을 어영부영하다가 사는 바람에 걱정이 많았는데, 잘 됐다. K형도 싸게 잘 샀다고 했다. 일단 생겼으니 후회없이 타는 수 밖에 없다. 지후가 나 태워주면 좋겠다. 

 여러 사람들이 도와줘서 발이 생겼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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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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