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농사는 결과적으로 잘 안 됐다.
고구마순은 비싸고, 수확량은 적었으니까.
굼벵이 피해가 많았다. 동네에서 굼벵이 약을 치지 않은 건 우리 뿐인데, 굼벵이 약 친 집에서도 피해가 많았다 하니...
고구마를 처음 캐 봤는데, 부러지는 것도 많고 손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껍질이 벗겨지니 정말 조심스러웠다.
고구마 선별은 정말 어려웠다. 난 포기하고 포장 작업만 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흠집 없고 이쁜 걸 받아야 기분이 좋을 텐데, 고구마는 애초에 그게 어려운 작물이더라.
물론 너무 모양에만 신경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크고 고르고 선명한 것들만 찾으면, 생산자들은 온갖 약을 다 써야 한다. 내성이 생길 정도로.
어느 정도는 농부의 마음을 소비자도 나눠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다.
준비한 상자가 너무 약했다. 안 그래도 걱정스러워서 좋은 고구마 상자의 재질을 알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다 구겨진 상자가 배송됐을까봐 속이 무척 상한다.
원래는 강화로 나가려고 했지만... 바람이 불어 배가 안 뜨는 바람에 농활대가 반나절 밖에 일을 못 했고, 일이 늦어져서 주문도 우체국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배에서는 고구마 상자를 부려 놓는 상황을 못마땅해 했고.. 상자더미가 불안해 보여 이리저리 옮기려는데 어디선가 "쓰러지면 어쩔 수 없지 뭐"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에서 포장하는 동안에는 바닥 쓸릴까봐 함부로 밀지도 않고 애지중지 다뤘건만, 내 손을 떠나자마자 망가질 운명이었던 거다.
남은 고구마들이다. 저녁에 추려 보니, 내다팔 수 있는 것도 다소 섞여 있지만, 대부분은 비상품이다.
저렇게 많은 고구마가 말이다.
어려운 일이다..
고구마 순 치고 비닐 걷고서.
고구마 다 줍고서.
밭이 다 비었다. 비닐 조각 치우러 한 번쯤 들르겠지만, 내년 봄까지는 안녕이다.
고구마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영영 안녕일 수도 있다.
고구마 키우느라 애썼어요.
고마웠어요.
하지만 굼벵이는 좀 많이 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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