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 밥

다정한 일기/리 2013. 3. 14. 18:53

안멀(안말, 내촌, 안쪽마을이란 뜻) 사람들은 농한기에 마을회관에서 밥을 해 먹는다.

10시 반부터 준비해서 11시 반이면 점심을 먹고,

4시 반부터 준비해서 5시 반이면 저녁을 먹는다.

매일 그런 것은 아니고, 사람들이 많이 나가 있을 때나 교회 일정이 있을 때는 생략하기도 한다.

 

주로 밥을 준비하는 사람은, 반장님과 킹킹엄마, 유권사님이다.

나는 그분들 곁에서 필요한 양념을 꺼내드리거나 쓰고 난 식기들을 치우거나 하는 식으로 요리를 돕는다. 간재미 튀기기처럼 요리 하나가 통째로 내 몫으로 떨어지기도 하는데, 당황스럽기 그지 없지만, "기름 많이 둘러요?" "지금 뒤집어도 돼요?" "튀긴 거 어디에 놔요?" 여쭤보면서 그럭저럭 해내고 있다. 어깨 너머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 효소 담그기부터 숭어 토막내기까지 별별 정보들을 보고 듣고 있다.

 

메뉴는 엄청나다. 밥과 국 기본에 반찬은 대여섯 가지가 된다.

오늘 점심엔 밥과 냉이감자국, 오이김치, 묵무침, 냉이무침, 우거지조림, 배추김치, 어묵볶음을,

저녁엔 밥과 미역국, 삼치숭어조림, 멸치호두볶음, 우거지조림, 배추김치, 어묵볶음을 먹었다.

누룽지도 거의 빠지지 않는데 참 구수하고 맛있다.

 

나는 요리를 돕고 난 다음, 상 펴고 수저 놓고 반찬 담아 놓는다.

누군가 밥을 푸면 밥을 나르고,

누군가 국을 푸면 국을 나른다.

내가 할 때도 있고 다른 이가 할 때도 있다.

 

다 먹고 나면 상을 치우고 설거지와 뒷정리를 한다.

상을 치우고, 라 함은.... 잔반을 버리고 그릇을 설거지통에 넣고 상을 닦고 다시 접어넣는 일을 말한다.

설거지와 뒷정리, 라 함은.... 모든 식기와 요리를 위한 기구들을 세제에 묻혀 씻어내고 -  보통 15명 정도가 함께 식사하기 때문에, 수저 15벌, 밥그릇 국그릇 합쳐서 30~35개, 반찬그릇 25~30개, 소주잔 5개, 커피잔 10개 정도 된다 - 수채통에 든 음식찌꺼기를 음식물쓰레기통에 담고 - 퇴비장에 버리는 것은 주로 할머니들이 하신다 - 큰그릇을 마른 행주로 닦아 제자리에 넣고, 설거지통을 닦고, 수세미를 빨고, 싱크대 전체를 행주로 훔치고, 행주를 빨아 너는 일을 말한다.

 

식사 준비부터 뒷정리까지 대개 2시간이 걸린다.

준비에 1시간, 먹고 치우는데 1시간.

 

며칠 안 해서 그런 건지, 아님 공부방에서 상차리고 먹고 치우기를 매일 같이 해서 그런지,

그다지 힘들거나 하기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외려 보고 듣는 게 많아서 즐거운 편이다.

쑥 효소 얘기하다가 먹기엔 그렇고 불피우기엔 적당한 쑥 얘기로 이어졌는데, 한 할머니가 그런 쑥 갖고 있다 하셔서 "저도 좀 주세요" 했더니 갖다 주시겠단다. 어젠 파 한 단이랑 빻은 마늘 한 통도 얻었다. 열심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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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니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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