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빴다. 굴 캔 다음날 홍대에서 친구들이랑 놀았고, 돌아와선 냉이 캤다.
그 사이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배 타러 외포리 가는 길에 차가 심하게 막혔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여기 볼 게 뭐 있다고 이렇게 몰려드는 거야?" 하며 툴툴거렸다. 버스에서 우리 동네 K 할머니를 만나 같이 걸어갔는다. 할머니는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어릴 적 조선어 책에서 배운 글귀를 기억하고 있었다. 참 인상적인 문장들이었는데, '평화롭고 관대한 짐승' 부분만 기억이 난다.
교회 밥당번이 우리 동네 할머니들이어서 설거지를 거들었다. 대략 80명쯤 식사를 했다. 원래 멤버 한 분이 자리를 비웠는데, 그 자리를 내가 메워서 참 다행이었던 모양이다. 베테랑들 틈에서 열심히 움직였다. 마을회관에서는 점심 저녁을 다 해 드시는데, 앞으로는 별일 없으면 가서 상차림과 설거지, 뒷정리를 해야 한다. 식사 인원은 15명~20명 정도. 매일매일 명절을 치르는 느낌일까? 내가 요리를 하는 건 아니라서 사실 그리 힘들지는 않다.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게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겠지.
또래들과 어울려 일하며 살다가, 이렇게 다른 세대들에 둘러싸여 살게 되었다. 젊고 어리니까 보살핌을 받기도 하고, 내가 해야할 일들도 많다.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된다.
오후엔 냉이를 캤다. 할머니들 걸음으로 10분 쯤 가니 밭이 하나 나오고, 그 밭에 들어가니 냉이가 지천이었다. 호미로 냉이 양옆의 흙을 긁어내고, 냉이를 뿌리까지 힘껏 뽑아낸 다음, 호미에 툭툭 쳐서 흙을 떨어내면 된다. 한 소쿠리 캤다. 할머니가 던져주신 냉이 한움큼까지 보태서. 나보다 40년, 50년은 더 산 할머니들이랑 냉이를 캤다. 뭔가 신기하고도 뭉클한 일이다. 그리고 할머니들은 말투가 거칠고 직설적이어서 무섭기도 하지만, 이야기하시는 거 귀동냥하고 있으면 너무 재밌다. "오늘 죽어도 아쉬울 거 없어"하는 말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정말 그럴 것 같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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