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동안 여섯 번째로 열리는 여성귀농학교에 참여하느라 홍성에 다녀왔다. 3박 4일 일정이지만, 나는 5박 6일로. ㅎ
그 시간들을 말과 글로 정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 테지만...
느낌만 남기는 건 싫으니까 메모를.

귀농에 관심 있는 사람,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 귀촌한 사람, 초보 귀농자, 귀농 7년 차, 17년 차, 25년 차... 생긴 것만큼이나 살아온 내력도 다 다른 여자들 스무 명 남짓이 한 공간에서 부대낀다니.. 기대보다 걱정이 더 큰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매우 다행히도..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애초 나의 질문들은 단순했다.
금방 바닥 나 구멍이 뚫릴 지경으로 얄팍한 밑천을 가지고도 시골에 들어가 돈 안 되는 농사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나와 비슷한 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기초적인 농사 노하우 몇 가지...
이것은 현재 나의 조건과 정체성을 말해주는 지극히 초보 귀농자다운 질문일 터.

결론적으로 속시원한 답을 구하지는 못 했다.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이미 어떤 경지 (혹은 지경 ^^)에 도달한 이들, 도시에서 내내 살았다 해도 나보다 10년 15년 인생 경험을 더 해온 이들과 섞여 있다 보니, 주된 이야기는 오히려 '귀농 그 너머' '여성귀농자 그 너머'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틀 정도 심한 두통에 시달렸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좁혀져 있던 시야가 넓어지는 계기가 되어 참 좋았다.

언어로 옮기는 순간 빠져나가는 맥락이 생기긴 하지만... 대략 기억에 남는 건..
온전한 인간으로 스스로 서기, 황당하게 생각하기, 내 몸의 고통을 그것대로 느끼기(병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유지되는 현대 의료시설에 몸을 맡기려고만 하지 말고), 나를 단련하기(두려움을, 게으름을, 나약함을.. 이마저도 나답게 해나가야 하는 것이겠지만), 건강한 먹거리 그 너머, 뒷산의 상상력(남들 눈에 잘 보이려 하지 말고.. 고라니처럼 울어보기.. 나물 하나 캐더라도 나만의 의식으로.. 춤추고 노래하고 시를 읊으며...)..

여러 가지 의미에서 스펙트럼이 넓은 모임이었는데, 누가 조정하지 않아도 역할이 분담되고 조정자가 생겨나고 움직이는 모습이 무척 신선했다. 사실 이런 경험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나 스스로 흠뻑 빠져들어 본 기억이 너무 멀고 희미해서 새삼 인상적으로 느낀 것 같기도.

한국에서도 히피의 삶을 사는 이가 있구나! 공양희 샘, 이토록 타협하지 않고 살아온 에코페미니스트라니! 강도은 샘이 함께 해서.. 놓치거나 불편해서 넘어갈 법한 정치적이거나 철학적인 대화들도 의미있게 이뤄질 수 있었고..

나 혼자서는.. 자꾸만 도망가려 하고.. 여전히 알고 싶은 것들이 많기도 해서.. 때로는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야겠다. 아직은 그럴 때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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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니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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