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들의 호의로 종종 먹을 것이 생긴다.

아주머니 할머니들은 반찬을 주시고,

아저씨들은 숭어, 가재, 꽃게 같은, 아주 싱싱한 해산물을 주신다.

 

반찬을 얻어오는 날은 기분이 아주 좋다.

그냥 바로 먹을 수 있으니까, 요리 안 해도 되니까 입이 째진다.

 

하지만 해산물을 얻은 날은,

솔~직히 말해서,

고마운 마음 한켠에 괴로운 마음이 생기는데...

손질의 어려움과 비린내 때문이다.

내 몸과 마음의 상태와는 관계없이,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던져지는 상황에 대한 부담감도 무척 크다. (무라까미 아저씨네 하우스에서 열무를 마저 수확해 온 날도 그랬다. 힘들어 죽겠는데 다듬어야 하는 열무가 산더미.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하루 내팽개쳤더니, 그새 잎이 노래져 반 정도는 퇴비통으로 들어갔다. 미안해 엉엉...)

 

가재를 처음 본 날도 그랬다.

우리 표고버섯 종균 주입하는 날이라 집근처에서 아저씨 여러분이 같이 일하셨고,

오후에 샛멀 죽방새우 아저씨가 가재를 한 망 가져오셨다.

참으로 드실 거라며 소금 두 숟갈 정도 넣고 쪄내 오라고 하는데,

처음 보는 가재를, 어떻게 손질해야 할 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징그럽게 생긴 데다, 살아 꿈틀거리는 애들을,

나더러, 어! 쩌! 라! 고!!!!!!!!!!!!!!!!!!!! 

솥에 물을 되는대로 담고 가재를 가득 넣고 소금 두 스푼 넣고, 기어 나오려는 가재들 위로 뚜껑을 덮고 불을 켰다.

속으로 엉엉 울면서, 얘들아, 미안해... ㅠㅠ

 

그 뒤로도 몇 번 가재장 담을 일이 있어 가재는 이제 익숙하지만,

(그래도 손질할 때 목 자르는 일은! 못 하겠다. 몸을 튕기듯이 구부릴 때의 느낌이.. 너무 괴롭다.)

오늘 꽃게 두 망은.....

또 울고 싶었는데 다행히 짝꿍이 다 다듬어 주었다.

(한 번 해보려고 덤비긴 했는데... 껍질이 벗겨진 꽃게가 반으로 갈리는 순간 집게다리를 떨었다. ㅠ)

 

여섯 마리는 꽃게탕 끓이고, 나머지 열댓 마리는 양념게장을 담갔다.

숭어찌개, 숭어조림, 가재찜, 가재장, 가재무침... 이제는 꽃게탕에 양념게장까지. 헐....

 

 

그동안 하나하나 해 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난 아무래도 나물 무쳐먹고 김치 담가먹는 게 맘편하고 좋다.

더이상은 안 갖다 주셔도 됩니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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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니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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