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사흘 연속 내렸고, 대부분의 고구마순은 자리를 잡은 듯 하다.

하지만 이렇게 말라 비틀어져 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녀석들도 꽤 많았다.

 

원래는 어제 땜빵 작업을 하려고 했는데,

도 할머니네 고구마 심는 작업을 하고 나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해 우리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도 할머니를 돕는 일은 분명 잘 한 일이다.

그 집에 갑자기 생긴 안 좋은 일은 둘째 치더라도, 이웃들 일을 도울 수 있을 때 돕는 건 당연히 해야할 일이니까.

그리고 도 할머니의 판단은 정말 훌륭했다.

비가 이틀 내려 땅이 젖은 상태라 물을 주지 않아도 되었고,

심고서 두 시간쯤 지나자 다시 비가 오기 시작해 고구마순이 자리를 잘 잡을 테니까.

 

안타까운 건 우리 고구마. ㅠ

아침에 짝꿍이랑 같이 작업하려고 했는데, 잠깐 미적거리는 사이 모내기 준비 때문에 O 아저씨가 오셨고,

고구마 땜빵 작업은 논일에 밀려서 나 혼자 하게 되었다.

비 내린 후라 상태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확연히 구분 되었는데,

생각보다 땜빵 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근데 이건 내 느낌일 따름이지, 동네 할머니들 말씀에 따르면 죽었다 살았다 몇 번 하고서 자리를 잡는다니,

그냥 두어도 괜찮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순이 많아서 일단 땜빵을 시작했다.

2시간 쯤 일을 하고 나자, 처음에는 비에 젖어 잘 잡히던 흙이 굳어가면서 손톱이 아플 지경이었고,

땡볕에 여린 순을 옮겨 심기도 애매해서 그만 하기로 했다.

이랑 16개 중 8개의 작업을 마쳤다.

나머지 중에도 말라 비틀어진 순이 많다는 걸 안다.

그것도 다 새 순으로 바꿔주고 싶지만,

동네 아저씨들이 키운 고구마순은 이제 너무 커서 심기에 적당해 보이지 않았다.

집에 미리 챙겨둔 순들도 이제 시들어 가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양과

일을 할 수 있게 주어진 시간과

적당한 날씨의 조합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게다가 동시에 진행되는 일과 관계들 사이에 마음놓고 내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지난 석달 동안 내가 여기 살면서 겪은 어려움은,

결국 섬이라는 공간이 주는 고립감이 아니었다.

사람 사이에 사는 일,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완전히 다른 이들의 흐름에 어떻게든 적응하는 일.

아직도 진행형이라 판단을 유보하는 부분도 있고, 섣부른 판단이 자신없는 부분도 많다.

 

아마도 올 한 해는 몸과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시간의 연속이겠지.

다행인 것은, 이 섬이 나는 좋다는 것.

땀흘려 밭일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잡곡농사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잘 해 보자. 어떻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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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니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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