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 불

다정한 일기/우 2013. 9. 3. 21:05

 우리집은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사시던 집이다. 구옥 옆에 신옥이 붙어 있고 구옥의 다른쪽 옆에는 할아버지가 잘라놓은 나무들이 쌓여있는 창고가 있다. 우리는 신옥에 살고 구옥은 폐허다. 나무 창고에 바투 붙어서 쓰레기를 태우는 드럼통이 있다. 오후에 집 뒤에 풀 나지 말라고 깔아뒀던 널판질들을 드럼통에 넣고 태웠다. 볼일이 있어서 1리에 나가 있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창고에 불났으니까 빨리와! 아내 목소리가 긴박하지 않아서 물호스 연결에서 끄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불이 크게 나서 나무 창고가 전소됐다. 불끄랴, 불구경하랴 동네분들이 엄청 많이 보이셨다. 목사님 부부도 오셨다. 불을 가장 먼저 발견한 Y이장님이 경운기 끌고 오셔서 우물물을 퍼서 고성능 호스로 불끄는 걸 도와주신게 큰 도움이 됐다. - 감사합니다. 의용소방대 형들도 다들 오셔서 열심히 도와주셨다. 그 와중에 나는 구경오신 분들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렇지만 불 다꺼질 무렵 한 장 찍은 것이 전부다. - 다들 정말 감사합니다. 가을에 추수하고 나면 동네랑 교회에 떡을 해서 돌릴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꼭 그렇게 해야겠다.

 

 강릉에 살 때, 아궁이에 불씨를 제대로 안 끄고 밖에 내놔서 산불 낼 뻔 한 적 있다. 강화에 이사와서 초지집에서도 아궁이 불씨를 밖에 꺼내놨다가 집 다 태워먹을 뻔 했다. 올 봄에도 산불 한 번 낼 뻔 했다. 그랬다가 오늘은 기어이 불이났다. 나는 불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에 하나가 '금각사'이기 때문인가? - 술 취하면 금각사 얘기를 자주 한다. - 그랬는데, 아까 불난 것을 보고 가슴이 계속 콩닥콩닥거렸다. 고성에 사는 형님네 집이 최근에 전소됐고 인명 피해도 있었다. 정말이지 불조심 해야겠다.

 

 오늘 아침에 YS형이랑 상합 잡으러 나갔더랬다. 12kg을 잡아서 바로 팔았다. 자세한 얘기는 여기. 먼저 소주 한 짝 팔았던 것은 가외 수입이라고 치고, 실질적인 첫 수입을 오늘 올렸다. 앞으로 돈이 많이 들어올라고 불이 났나보다. 하고 쿨하게 생각하자. 오늘 탄 자리는 원래도 올겨울에 허물려고 했던 자리다. 개똥쑥 씨 밭아서 개똥쑥 밭으로 만들어야겠다.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 이제 구옥만 보인다. 파란 지붕 아래가 내가 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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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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