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일기/리
100 - 할머니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5. 31. 19:39
늘 가는 길들이 생겼다.
길은 미지의 공간으로 이어져 있는데, 내 발걸음은 중간에서 멈추곤 한다.
밭까지만 가니까, 하우스까지만 가니까, 오늘은 힘이 드니까.
하우스 고구마에 물 주러 가는 길, 너무 땡볕이라서 시간도 보낼 겸,
늘 멈추던 길의 한 지점에서 다른 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 보았다.
양쪽으로 그리 크지 않은 밭이 여러 개 이어지더니
길 끝으로 모래사장, 갯벌, 그 너머 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몸이 너무 작은 할머니.
조개더미를 짊어지고 걸어오는 할머니는 허리를 너무 푹 숙인 나머지,
상체와 다리의 각도가 90도도 채 안 되어 보였다.
샛멀에 사시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다 드리기로 했다.
자전거 바구니에 조개를 넣는데, 바퀴가 휘청 돌아갔다.
나일론줄로 짠 가방은 튼튼해 보였지만,
이렇게 무거운 조개더미를 메고 걸어간다면 어깨에 멍이 들 것이 분명했다.
듬성듬성 빠져나간 치아 사이로 자꾸 말이 샜다.
이 섬에서 태어나 여태 살았다는 할머니는,
작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돈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고구마순은 어제보다 더 시들었다.